본문 바로가기

[서평] < 영어의 힘 > 멜빈 브래그 지음

by 큰불 2024. 4. 25.
반응형

영어의 힘 서평


 < 영어의 힘 > 

저자 : 멜빈 브래그

저자는 BBC 라디오 4에서「영어의 여정 the Routes of English」이라는 25부작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했고 영어의 역사를 다룬 8부작 TV프로그램「 영어의 모험 The Adventure of English 」을 제작해 많은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은 그 프로그램들을 바탕으로 5세기부터 21세기 현재까지 < 영어라는 언어가 헤쳐온 길>을 모험과 성장 스토리의 구조로 설명하고 있다.

 

 

'영어'라는 언어는 당연히 '영국'의 역사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영국의 역사에 따라 영어의 시작과 위기 그리고 다시 부흥한 이야기, 언제 세계로 뻗어 나갔는지에 대한 책입니다.

 

영어의 시작은 게르만 족의 언어지만 역사가 진행되면서 바이킹의 언어, 프랑스의 언어,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영어 속으로 들어와 섞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대항해시대 때는 스페인의 언어, 포르투갈의 언어 그리고 더 넓은 세계의 곳곳의 언어가 영어 속으로 섞였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영어의 단어의 수가 어떻게 늘어났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영어의 단어들은 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다양한 곳에서 들어와서 발음패턴이 다양한 것이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같은 곳에서 들어온 단어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발음합니다. 

 

※ 아래의 내용은 책의 내용을 요약한 것도 있고 그대로 붙여 쓴 내용은 " " 속에 넣으려고 했습니다.

 


1. 게르만 전사들이 갖고 온 영어, 낯선 땅에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다.

 

- 영국의 땅에는 켈트어를 쓰는 켈트족이 살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43년부터 기원후 410년까지 브리타니아를 지배했는데 본국으로 철수했고, 치안이 불안해졌나 봅니다. 그래서 게르만족에 속하는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살던 사람들 )을 용병으로 고용해서 영국 땅으로 불러 안전하게 지냈는데 이 용병들이 살아보니까 비옥한 땅이 참 맘에 들었고, 자기들이 이 땅을 지배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전쟁을 해서 기존에 살던 원주민들인 켈트족을 서쪽, 북쪽으로 몰아냈다.

 

- 게르만족은 자신들의 언어가 있었는데 이게 영어의 근본이 되는 언어이다. 영어가 가장 앞선 언어가 되기까지는 200~300년이 걸렸지만 켈트족과 함께 켈트어를 몰아냈다. 같은 단어가 있더라도 사람들이 영어로 된 단어를 쓰게 되었고, 켈트어는 변방에서 쓰게 되었다.

 

- 네덜란드 (원래 게르만 족이 살던 지역)에서 쓰는 프리지아어 영어의 부모라고 한다. lamb, goose, butter, bread, cheese, sea, storm, boat, rain, snow, meal, sleep에 해당하는 단어들과 유사한 철자 발음의 단어가 프리지아어에 존재한다.

 

- 영어 속에 있는 켈트어는 남은 흔적이 거의 없고 호수, 강 같은 지명 속에 남아 있는 게 다라고 한다.

 

- 로마 정복기에 켈트인들이 쓰던 단어들도 영어에 끼친 영향은 미미하지만 200개 정도의 단어가 영어 속으로 받아들여졌는데 plant, cat, kettle, anchor, chest, wall, camp, letter, rose 등이 라틴어(=로마인들이 쓰는 언어)에서 유입되었다. 

 

- 로마에서 보낸 선교사들이 영국에 도착했고 사람들 사이에 카톨릭이라는 종교가 점점 퍼져나가면서 교회의 언어 (=라틴어)가 영어 속에 공급되었다. 그리고 라틴어 속에 섞여 그리스어도 간간이 들어왔나 보다. angel, bishop, minister, monk, nun, psalm, pope, school 등이, 라틴어와 관련된 말이고 영어 속으로 들어왔다. ( 기존에 쓰는 단어들이 없는 새로운 사상과 관련된, 새로운 단어들은 그대로 영어 속으로 흡수되는 듯. )

 

부자였던 주교들은 로마에 가서 문자( =로마자 알파벳)를 가져왔다. 게르만족은 자신들의 주로 직선으로 만들어진 기호들인 룬 문자를 영국으로 가져오지 않았다.

 

문자만이 언어를 보호할 수 있다. 글로 써서 남겨야지 기억이 저장이 되고, 후세들이 이어받아 발전할 수 있겠지. 알파벳이 7세기 초에 들어와서 고대영어는 자신만의 고유한 알파벳을 수립하게 되었다.

 


2. 바이킹의 공격을 받는 영어, 굴복하거나 혹은 견뎌내거나 

 

바이킹들이 몰려왔다. 거의 300년 동안 이 스칸디나비아 전사들의 습격을 받고, 이들이 정착하면서 영국의 광대한 지역을 황폐화시키고 영어 자체에도 큰 위협이었다. ( 영어를 쓰는 사람을 죽였으니까. )

 

침략한 전사들 중 가장 군사력이 강했던 이들은 데인족 (덴마크인)이었다. 이들은 전쟁에서 승리해 영국 중부와 동부 지역의 막대한 영토를 차지했다. 바이킹의 언어는 영어와 같은 뿌리에서 났지만 다른 언어로 발달했다. 9세기 중엽에 데인족은 남쪽으로 군대를 이끌고 내려와 공격했다.

 

알프레드 대왕은 패배해 도망쳤지만, 다시 군대를 모아서 데인족을 격퇴했다. 데인족의 왕인 구드럼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목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후에 데인로(Danelaw)라는 경계선을 만들어 경계선의 북쪽, 동쪽을 데인족의 관할지역을 주었다. 다시 전쟁을 하지 않으려 서로 그 선을 넘지 않았다.

 

데인족이 관할하는 지역에서는 그들의 언어인 바이킹의 언어가 사용되었고, 서로 교역은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어를 쓰는 사람들도 몇몇 단어들을 인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바이킹들의 언어의 흔적은 현재도 남아 있는데 '농장이나 소도시'를 뜻하는 스칸디나비아어인 -by로 끝나는 영국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외에도 -thorpe, -thwaite, -toft 등으로 끝나는 지명도 있다.

 

바이킹의 성(family names)을 쓰는 방식도 여전히 남아있다. 아버지의 이름에 -son을 붙이는 방식은 북쪽 지방에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  

 

스칸디나비아어에서 쓰이던 get, same, take, want, dirt 같은 단어들이 영어 속으로 들어왔다. 다른 단어들로 birth, cake, egg, sister, skill, smile, skin, sky, score, knife, hit, husband, root, wrong 등이 있다.  

 

영어는 데인족의 언어와 접촉하면서 <문법의 대변화>가 일어나 굴절어미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전치사가 등장하였고, 중요해졌다. 

 

반응형

3. 노르만족의 침략, 영어 일생 중 최대 위기에 봉착하다. 

 

"정복왕 윌리엄에게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패배한 결과( =노르만 왕조 시작)로 결국 고대영어 어휘의 85퍼센트를 잃게 되었다. 영국과 영어는 새로이 영국을 지배한 사람들의 말에 압도당하고 억눌리고 두들겨 맞았다." 

 

노르만족이 사용한 앵글로 노르만어의 뿌리는 라틴어에 있었다. 노르만족은 왕과 지배층이 쓰는 언어인 외국어를 영국으로 가지고 와서 그것을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윌리엄 공작이 영국의 새로운 왕 윌리엄 1세가 된 이후 200년 이상 엄청 많은 프랑스어 단어가 영어로 쏟아져 들어왔다. army, archer, soldier 같은 전쟁 어휘, crown, throne, court, duke, baron, nobility, peasant, servant 같은 사회계층에 대한 어휘, governor, authority, traitor 같은 어휘도 들어왔다. "

 

법률 분야 어휘 : felony, warrant, justice, jury, accuse, sentence, prison 등의 단어가 들어왔다. 

 

"노르만족의 정복 이후 아마도 1만 개에 달하는 프랑스어 단어가 영어를 대체한 것으로 보인다고 함.  예술, 건출과 건물, 교회와 종교, 연예, 패션, 음식과 음료, 정부와 행정, 가정생활, 법률과 법정 업무, 학자와 학문, 문학, 의학, 군사 업무, 승마와 사냥, 그리고 사회계급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포진되었다" ( 중복되는 뜻의 단어들이면 프랑스어에서 들어온 단어로 대체된 것이 많았다는 뜻. )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주방에서 쓰이는 음식, 식사, 조리에 관련된 단어들도 많이 들어왔다. 

 


4. 포위되어 있을지라도 영어는 아직 살아 있다. 

 

영어로 쓰였던 「앵글로 색슨 연대기」는 수도원에서 작성했는데 수도원장을 프랑스인들이 맡게 되면서 당연히 영어로 쓰이는 것도 사라져 갔겠지. 

 

"1066년 이후의 영어는 여전히 민중의 언어였다. 영어는 공식적으로 무시당하고 문자 언어의 많은 전통이 제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변화하며 견뎌나갔다"

 

"영어라는 언어를 모르는 프랑스 백작 헨리 2세가 1154년 새로운 영국의 왕이 되었다. 프랑스어와 라틴어가 정부와 법정은 물론 새로운 문화의 언어로 훨씬 더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헨리 2세 통치기에는 다른 방언들, 특히 중부 프랑스어인 프랑시엥이 영어에 기여했다. ( 이전에는 노르만 왕조가 위치한 북부의 프랑스어( =일종의 프랑스어의 방언)의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 )

 

"새로운 단어는 새로운 개념의 씨앗을 뿌린다."

 

"영어로는 동물의 이름을, 프랑스어로 동물의 고기의 이름을 불렀다. 영국인들은 노동을 했고, 프랑스인들은 잔치를 벌이며 즐겼다."

 

90-92page에 프랑스어 차용된 단어들을 많이 써놨다. 모음이 ai, ay, oi, oy인 단어들은 프랑스어 차용어일 확률이 높고, 단어의 끝도 -on으로 끝나는 단어도 그렇다. ( 단어의 끝과 단어의 뿌리는 관련이 있고 - 발음을 추측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

 


5. 주먹으로 한 방 맞긴 했어도 영어는 이제 막 왕관을 차지하려는 참이다. 

 

프랑스어는 상거래 도구, 측정에서 보인다 : measure, chisel, pulley 등이다. 

 

시장에서 쓰이는 것도 프랑스어가 주였다 : money, merchant, price, bargain, contract, partner 등이 있다. 

 

"(지배계층이 프랑스 혈통인 사람들이 있을 때는) 영어는 발전하는 언어가 아니었고, 힘을 가진 언어도 아니었으며, 어려운 상거래의 언어도, 심지어 교육받은 사람들의 대화 언어도 아니었다."

 

1204년 전쟁으로 노르망디와 아키텐 그리고 영국의 왕이었던 존(= 통치를 잘 못함)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노르망디 땅을 잃었다. 노르만에 있던 남작들은 영국에 충성할지, 프랑스에 충성할지 결정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제 프랑스인들이 외국인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국에 있던 노르만인들은 자신을 반노르만인으로 여기기 시작해야만 했다."  ( 노르망디 땅을 뺏겼기 때문에 기댈 곳이 영국 밖에 없게 되어, 귀족들도 자신을 프랑스인이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다는 뜻.)  

 

" 그러나 기록은 13세기 중엽 이후에도 프랑스어가 영어에 훨씬 더 많이 유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어는 당시 국제 교역 언어였기 때문에 동양의 시장에서 쓰는 단어들도 프랑스어로 만들었고 이게 영어로 들어왔나 보다. mattress, hazard, alchemy, syrup, checkmate (=왕이 죽었다는 뜻이었군요.) 등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단어들에 ask와 demand처럼 미묘한 차이들이 생겨났다.( ask는 요청이라면 demand는 더 확고하게 요구는 느낌인 듯. )  프랑스어가 영어단어를 대체하지 않고 둘 다 살아남았는데 상황별로 다르게 써서 의미를 세분화할 수 있는 게 좋아서.

 

1348년 흑사병이 창궐해서 영국 인구 400만 명의 1/3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염병으로 귀족들과 라틴어를 쓰는 성직자들도 많이 죽었다. 

 

"리처드 2세는 노르만족의 정복 이후 영어만을 사용한 것으로 기록된 군주 가운데 첫 번째 사례다"

 

" 영어로 교육을 받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인구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영어로 쓴 책들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 

 

" 1362년, 거의 300년 만에 처음으로 영어는 < 공식 업무의 언어>로 인정받았다. 이제부터는 영어로 소송이 진행될 것이라고 공포되었다. ( 흑사병으로 행정가, 법률가등이 사망했으므로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이 수가 적어졌음. )"

 

프랑스와의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으로 양국은 불화가 심했기 때문에 영국의 왕좌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민중들이 탐탁지 않게 생각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것에 위협을 느끼게 됨. 

 

"랭커스터 공작이 헨리 4세 왕이 되었고 영어는 다시 한번 왕실의 언어가 되었다"

 


 

6 중세, 드디어 영어에 봄날이 오다. 

 

제프리 초서 - 영어로  '캔터베리 이야기'를 쓰다.

윌리엄 캑스턴 - 위 책을 인쇄하다.

 

7. 영어 교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다.

 

"15세기에는 제 1언어로 확산되고 있던 영어를 사회의 중심적이고 지도적인 위치에 올려놓으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국가와 교회는 도전받았다." 

 

중세 후기 영국은 종교사회였는데 성경은 라틴어로 쓰여 있었기에 영어만 아는 일반사람들은 성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위클리프(= 카톨릭을 이끄는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음.)와 그의 추종자들은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만들었다. 

 

"새로운 단어들이 위클리프 성경에서 처음 나왔다. ( 성경에서 쓰인 라틴어를 번역하면서 적합한 단어가 없으면 새로 만들었다는 뜻인 듯. ) 다시 한번 영어 어휘고에 첨가가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새로운 개념이 소개되고 기존의 개념에 이름이 붙여졌다."

 

이 성경에는 새롭게 등장한 라틴어 단어들도 1,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8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표준화된 영어가 필요했다. 

 

헨리 5세 등장. 옥새실에서는 반드시 영어를 사용하도록 명령했다. 프랑스어는 행정어로서의 지위를 잃고 영어가 통치어가 되었다. 

 

"당시의 철자 설명서에서는 "말하는 대로 써라."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문제는 지역마다 단어를 말하는 게 달랐고, 그래서 단어들의 철자가 통일되지 않고 있었다. 철자의 다양함은 아주 심했다."

 

웨스터민스터의 필경사들은 공문서 보관소에서 written English의 형체를 만들고 있었다. ( 글을 멀리 지방에 있는 지역에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글자를 통일해야 한다고 생각. )

 

간섭주의자들은 그리스어에 기원을 두었다고 여겨졌던 단어들의 철자를 때때로 수정했는데 throne, theatre, rhythm, rhyme의 h를 집어넣은 것이 그 예이다.  

 

모음대추이는 15세기 ~ 17세기에 걸쳐 일어났는데 이 큰 변화로 인해서 영어의 모음들이 유럽의 모음소리와 다른 음가를 가지게 되었다고 함. 

 

중요한 것은 모음대추이가 일어나기 전에 인쇄술이 철자를 거의 고정시켰다는 점. 철자는 고정되었는데 발음은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에 발음과 철자의 괴리가 생겼다고 함.

 

"공문서 서기와 인쇄소 식자공, 영어의 철자 통일을 가져온 1등 공신들 - 인쇄소의 장인들 또한 정확하고 표준이 되는 영어 철자가 어떤 것이 될지에 대해 중재자가 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았음 "  ( 자신이 사용하는 철자로 글을 쓰려했을 테니까 이들이 어디 출신인지가 철자에 영향을 주었을 듯. ) 

 

이들이 정한 단어 철자 ( =런던 방언) 서서히 다른 지역의 방언들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점진적으로 <표준어>로 부상하게 된다. 

 


9. 영어는 드디어, 하느님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틴들의 단어들과 구절들은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에 60 ~80%의 영향을 미쳤으며 이 성경을 통해 그의 단어들과 구절들이 온 세계로 퍼져나갔다. scapegoat, let there be light, clear-eyed, two-edged 등의 불태워진 틴들의 성경 속의 단어들인가 보다. 

 

헨리 8세와 교황이 사이가 틀어졌고, 1537년 공식판인 대성경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 영어로 된 성경을 카톨릭의 고위 사제들이 막고 있었는데 사이가 틀어져서 영어성경이 만들어지는 것을 영국의 왕이 막지 않은 것.)

 

10 어느 누구도 영어의 식욕을 제어할 수 없었다. 

 

"대항해시대가 되었고, 영어는 < 어휘라는 거대한 화물 >을 수입했다.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와 그 뒤 왕조시대에 1만 개 이상의 세계의 새로운 단어가 영어로 유입되었다."

 

프랑스에서 여전히 단어 (crew, passport 등)가 들어왔고, 제3국 → 프랑스를 거쳐 → 영국으로 들어온 단어( duel, ticket )들도 많았다. 이미 식민지 경쟁에 먼저 뛰어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단어( banana, guitar, hammock )가 유입되었다. 네덜란드에서도 단어(yacht, landscape)가 유입되었다. 

 

"영국 선원들이 외국에서 새로운 음식과 과일을 만나면 영국의 시장에서 팔아보려고 가득 싣고 왔는데, 원래의 이름을 쓰기도 했지만 영어식으로 바꾼 이름을 가져오기도 했다."

 

"신조어라는 화물에 합류한 약 50여 개의 언어들이 이 시기에 들어왔고 그들은 영어 속으로 통합되었다."

 

영국의 예술가, 학자, 귀족들은 유럽을 여행할 때 선호하던 목적지가 이탈리아였는데 그곳에서 건축, 예술, 음악과 관련된 어휘들을 알게 되어 영어 속으로 가지고 왔다. opera, violin, solo, cameo, villa, balcony 등이다. 
( 나라라다 유명한 것이 달랐고, 그 지역에서 붙여진 단어가 영어로 유입됨. )

 

"라틴어는 여전히 국제적인 토론과 논쟁의 언어였다. 르네상스 시대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통해서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어 영어로 유입시켰다."

 

학자들은 과학, 의학을 연구하면서 라틴어, 그리스어에 자주 의존했고, 자신들이 발견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고전어들을 사용했다. 이는 후대의 18세기의 학자들도 똑같이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 때 그리스어, 라틴어를 이용해 새로운 단어들을 만들었다. 

 

영어나 프랑스어로 단어를 만들면 그 언어를 쓰지 않는 국가에서 반감을 갖고 사용하기 싫을 수 있기에 라틴어나 그리스어로 단어를 만드는 게 거부감이 덜 해 보인다.

 


12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영어에 반란을 일으켰을까.

 

"오늘날 쓰이는 2,000여 개의 영어 단어를 그가 맨 처음 기록했다. 그가 선택했거나 창조했거나 간에 말이다."

 

ill과 tune을 묶어서 ill-tuned를 만들었고, smooth-faced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셰익스피어는 우리에게 단어와 통찰력의 신세계를 열어주었다고 한다...

 

 


13. 미국, 영어의 가장 중요한 상속자가 되다.

 

아메리카에는 원주민들이 이미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수백 가지 다양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1513년 이후에는 스페인들이 남미에 정착했으며 이들은 플로리다까지 퍼져나갔다. 프랑스인들 역시 세인트 로렌스에 교육소를 세우기도 했다.

 

"1640년이 되자 또 다른 200척의 배들이 15,000명의 새로운 이민자들을 싣고 뉴잉글랜드로 왔다. 그들은 새로운 동식물과 지형을 발견했고,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단어들이 필요했다. 어떤 단어들은 그 지역의 언어에서 왔고, 일부 단어들은 영어를 새롭게 조합해 만들기도 했으며, 일부는 이미 갖고 있던 단어들로 새로운 동물과 새들의 이름을 부르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racoon, skunk, totem, tomahawk 등이 원주민의 언어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원주민의 언어가 있더라도 영어 단어를 조합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것을 선호했고 편하게 생각했다. 

 

정착민들은 영국에서 쓰이는 지명을 뉴잉글랜드( =미국)에서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 미국 양쪽에서 중복되는 지명이 200개 정도 된다고 한다. 

 

 동전인 cent, dime은 프랑스어에서 들어온 단어이다. 

 

"영국인들은 무역이 아니라 정착해서 살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곳곳에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퍼져나갔고 핵심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다. "

 

영어가 널리 퍼지면서 미국영어는 영국에서 사용되는 영어와 차이를 주고 싶어 했고, 같은 대상임에도 미국과 영국에서 쓰는 단어들에 차이가 생기기도 하고, 같은 단어들의 의미가 달라지기도 했다.

 

1775년 미국의 독립혁명이 시작되었다. 1년 후 13개의 식민지가 독립을 선포하였다. 

 

노아웹스터는 「미국철자 교본, 파란 표지 철자 교본」으로 불리는 작은 책을 쓴 교사였다. 그는 발음상 필요가 없는 부분을 더 간단하게 고쳤는데 colour, honour의 -our을 -or로 철자를 바꿨다. traveller에서 l을 하나 없앴다. centre, theatre의 re도 발음에 맞게 철자를 -er로 바꿨다. 

 


14. 서부로 달려간 영어, 굶주린 사자처럼 먹어대다. 

 

미국의 3대 대통령 제퍼슨은 프랑스에게 루이지애나라고 불리는 땅을 1,500만 달러에 매입했고, 바로 45명의 탐험대를 서부로, 미지의 세계로 파견했다. 

 

클라크와 루이스라는 두 개척자의 기록에서는 원주민들의 단어를 새로운 발견한 것에 이름을 붙이는 데 사용했다. ( 창조하는 것보다 그것이 쉬웠겠지. )    

 

"초창기 미국의 주(州) 13개의 이름 중에서 원주민의 언어가 들어간 이름은 2개 매사추세츠와 코네티컷 뿐이었으나, 서부로 영토가 확장되면서 원주민의 단어가 더 많이 주 이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서부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만든 놀이, 술로 인한 새로운 단어들, 구문들이 만들어졌다.

 


나머지 

 

산업혁명으로 새로 발전한 산업에서 생긴 단어, 인도에서 영어로 들어온 단어, 스페인어 포루투칼어가 식민지에서 만든 단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긴 단어가 영어로 유입된 것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반응형

댓글